애꾸 왕이 만든 최초의 고양이 보호소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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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애꾸 왕이 만든 최초의 고양이 보호소


고양이 보호소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19세기 영국의 동양학자 에드워드 레인이 쓴 <현대 이집트인의 태도와 풍습 이야기(An account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modern Egyptians)>(1871)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레인은 1820년대 말 카이로에서 살았는데, 매일 오후 고등법원의 정원에 길냥이들이 몰려드는 신기한 광경에 놀랐다. 사람들은 음식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래서 재판관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13세기부터 의무처럼 전해지는 풍습이라며 옛 이집트의 왕 바이바르스 1세에 의해 시작됐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십자군 전쟁 때 두각을 나타낸 바이바르스 1세(1223-1277)는 1260년 쿠투즈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자신의 왕조를 굳건히 하며 38번의 원정을 통해 십자군이 장악한 시리아의 여러 도시를 해방시켰다. 때문에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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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군사적 업적 말고 공공사업 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가 “길냥이들이 편히 쉬면서 생기를 되찾을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라”는 흥미로운 지시를 내린다. 카이로 북쪽의 사원 근처에 ‘게이트 엘 쿠타’라는 고양이 정원은 그렇게 조성되었다. 이곳에선 털색이 다르든 나이가 들었든 장애가 있든, 어떤 고양이라도 전혀 차별받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고양이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지역도 팔려 개조되고 변경되면서 원래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바이바르스 1세의 고귀한 뜻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전통처럼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카이로가 지금도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고양이가 가장 사랑받는 곳으로 알려진 까닭도 이런 바탕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그토록 위대한 왕이 왜 하찮게 보이는 길냥이들에게 천국 같은 안식처를 마련해 줬을까? 고양이를 신으로 섬기던 이집트였으니 이상할 리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아마도 바이바르스 1세의 남다른 개인사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밝은 금발과 갈색 피부, 파란 눈동자에 키가 큰 호남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태어날 때부터 한 쪽 눈이 기형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젊었을 땐 몽골군에 붙잡힌 뒤 노예상인에 팔려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 고생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배고프고 병든 길냥이들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렸으리라…….


역사가들은 이 옛 카이로의 고양이 정원이 오늘날 고양이 보호소의 시초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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