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머리 정승을 구한 들냥이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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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돼지머리 정승을 구한 들냥이


우리 설화를 보면 고양이 때문에 죽을 목숨을 건진 사람이 여럿 나온다. 조선 중종 때의 정승 장순손(張順孫, 1457-1534)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특이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바로 돼지를 닮은 얼굴! 그래서 뭇사람들은 그를 ‘돼지머리’란 별명으로 더 잘 불렀다.


1913년 최상의가 집필한 야담집 <오백년기담>에는 이 돼지머리 정승과 들냥이의 기막힌 인연이 기록되어 있다. ‘묘활저두(猫活猪頭)’라는 제목의 37번째 이야기다. 역사적 팩트와 연결해 살펴보면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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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임금 자리에 올라 온갖 폭정을 일삼고 있던 연산군은 채홍사에서 산홍이란 기생을 알게 되어 이후 그녀를 곁에 끼고 애지중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묘에서 제를 올린 뒤 연산군에게 돼지머리를 바쳤는데, 그것을 본 산홍이 갑자기 웃음보를 터뜨린 것이다. 연산군이 그 이유를 묻자, 산홍이 “고향인 성주에 장 돼지머리라고 불리는 자가 있는데, 돼지머리를 보니 문득 그 자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답했다. 그 장 돼지머리가 바로 장순손이었다.


이에 그가 산홍의 정부라고 여긴 연산군은 마구 화를 내면서 의금부에 놈을 얼른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린다. 당시 장순손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들이닥친 의금부 사람들에게 붙들려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경상도 상주의 함창에 있는 공검지 연못가를 지난 중이었데, 별안간 들냥이 한 마리가 나타나 갈림길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장순손이 대뜸 금부도사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그동안 과거를 치러 갈 때마다 고양이가 길을 건너가는 광경을 보면 틀림없이 합격을 하곤 했습니다. 근데 오늘도 고양이가 갈림길을 건너갔군요. 부탁인데, 고양이가 간 길로 따라 갔으면 싶은데…….”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 여긴 금부도사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문경에 도착하자 얼마 전 장순손을 참수하라는 연산군의 명을 받든 선전관이 큰길로 지나갔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길이 엇갈린 것을 안 의금부 사람들은 문경 새재에서 선전관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선전관이 돌아오는 사이에 연산군이 그만 왕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장순손은 이렇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 승승장구해 영의정까지 올랐다고 한다. 

 

들냥이가 아니었다면 장순손은 정말 고사 상의 돼지머리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됐을지 모른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의 활약은 우리 역사의 흐름에 적게나마 영향을 끼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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