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로 괴질을 막으려 했다고?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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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고양이로 괴질을 막으려 했다고?


19세기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 중 하나라면 콜레라를 들 수 있다. 물을 통해 전염되는 이 질병은 아주 빠르게 퍼질 뿐 아니라 치사율도 무척 높았다. 


원래 콜레라는 1800년대 전까지 인도 벵갈 지방에만 있던 풍토병이었다. 하지만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진 탓에 병원균이 해외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 광동과 산동, 북경을 거쳐 결국 조선에까지 들어왔다.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을 보면, 우리나라에선 19세기 초부터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평안도로 들어온 콜레라는 황해도를 거쳐 한양,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점점 번졌는데 일제강점기까지 광범위하게 20차례나 발생했다. 


콜레라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에는 마을마다 집단적으로 죽는 상황이 이어졌다. 콜레라가 창궐한 1858년에는 50여만 명, 1886년과 1895년에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콜레라가 사람들에게 공포의 질병으로 인식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의학 수준으로는 콜레라의 정체를 밝혀낼 수 없었다. 괴이한 병이란 뜻에 괴질(怪疾)로 부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정은 잘못된 정치에 재앙이 내리는 것이라 여겨 콜레라 발병이 보고되면 곧바로 죄수들을 석방하는 등 어진 정치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싶어 했다. 물론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었다. 


콜레라는 아프기가 독하기로 악명 높은 질병이다. 오죽 아프면 범이 살점을 찢어내는 듯 고통스럽다는 뜻에서 호열랄(虎列剌)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조선 사람들도 그 아픔이 마치 쥐가 몸속 곳곳을 물고 다닌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쥐통’, ‘쥐병’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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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탐험가 샤를 바라의 책 <조선기행>에 실린 '고양이 부적'
 


그들은 잠자는 사이, 쥐의 모습을 한 악귀가 다리를 갉다 배로 올라와 몸속에 스며든다고 믿었다. 민간에선 이런 콜레라를 극복하기 위해 약초를 쓰거나 역신을 몰아내기 위해 대문 앞에 황소 머리를 두거나 개고기로 만든 죽이나 국을 먹이는 등 여러 대처법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활용한 요법. 즉 집안에 고양이 기르기를 비롯해 대문과 방에 고양이 부적 붙이기, 고양이 수염을 태워 먹이기, 고양이 영혼에 기원 올리기, 경련이 생긴 곳에 고양이 가죽 문지르기 등이었다. 


지금 보면 정말 황당한 행위들이다. 하지만 조선 백성들에겐 그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1895년 의료선교사 올리버 에비슨에 의해 콜레라가 병균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이 홍보되었고, 대한제국 때 <호열랄예방주의서>란 책자도 보급되는 등 보건위생 사업이 전개되면서 콜레라는 이 땅에서 점차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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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63 붕장군 2017.12.25 20:18  
조상들의 미신이란.,.  정말 기기묘묘한 것들이 많네요.;;;;
52 꽁지마요제리… 2017.12.26 06:15  
개고기?고양이가죽?으으으으으으으으